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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기사 - 베테랑의 몸, 자연주의 출산 조용히 이끄는 전문 의료인 김수진 조산사

작성일
2022-11-16
첨부파일

[베테랑의 몸] 자연주의 출산 조용히 이끄는 전문 의료인 김수진 조산사

김수진 조산사가 산모의 자연분만으로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본 아기를 안고 있다. 김수진 제공


출산을 앞둔 산모는, 아프다. 죽을 만치 아프다고 들었다. 그리고 병원은, 차갑다. 싸늘한 수술실과 건조한 말투의 의료진이 몸을 헤집는다. ‘출산 굴욕 3종 세트’라 부르는 자궁 내진, 관장, 회음부 절개로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닌 몸이 수술대에 올려진다. 그런데 아기는 너무 예쁘단다. 이것이 주변 사람들이 내게 말해준 출산 경험이다. 낳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리지만, 나에게 출산은 인생을 살면서 피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출산 과정을 즐거이 떠올리는 이가 있었다. 마음이 세심하게 헤아려지고 다정한 말이 오가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저희 첫째, 둘째를 다 그 선생님이 받아주셨어요.” 그에게서 조산사 김수진(56)을 소개받은 참이었다.

김수진 조산사(가운데)가 출산을 앞둔 임신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형락


출산은 외로운 과정이니까

“요즘도 조산사가 있어요?”

수진씨가 직업을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반응이라고 했다. 내게도 조산사는 친숙한 직업은 아니었다. 출산을 조력하는 일을 한다는 것 외에 아는 정보가 없었다.

“다들 그래요. 산모분들도 처음에는 굳이 병원에 의사가 있는데 조산사랑 무슨 이야기를 하지? 이런 반응도 보이고요.”

그 자신도 처음 조산사 자격 면허를 취득했을 때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30년 전, 그는 분만실 간호사였다. 주변에서 조산사를 하면 잘할 거 같다고 해서 일단 자격증은 따두었다. 1999년의 일이다. 이후 분만실 수간호사까지 됐지만, 그 자신도 조산사 역할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외국은 우리와 출산 환경이 많이 달라요. 조산사의 업무도 넓고 깊숙하고요. 우리는 임신하면 산모가 고위험군이건 아니건 모두 다 병원에 방문해서 진료를 받잖아요. 오스트레일리아나 미국만 해도 일반 산모는 조산사에게 산전 진찰을 받아요. 분만 과정에 조산사가 완전히 개입하죠. 산후에도 조산사가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산모 상태를 살피고요.”

국내에서도 조산사가 출산 과정 전반을 체크하고 의료적 개입이 필요한 시점을 파악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간호사의 역할과 혼재돼, 조산사 자체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눈에 출산을 앞둔 여성은 외로워 보였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채 계속되는 통증과 불안은 사람을 외롭게 한다. 그걸 수술대 위에서 혼자 견디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산통을 줄일 수 있을까 찾아보니 ‘히프노버딩’이라고 최면 출산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최면 출산이라고 해서 ‘레드 선’ 걸어서 산모가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출산하는 건가 싶었는데 때마침 미국에서 전문가가 와서 강연한다더라고요. 들어보니 피부 만져주기나 아로마 사용법, 호흡법 등 이완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그걸 제가 근무하는 병원의 산모들에게도 해봤어요. 다들 너무 편안해하는 거예요. 단지 피부를 만져주거나 안심시켜주는 것만으로. 신기하다. 이거 해봐야겠다.”

그렇게 수진씨는 자연주의 출산을 알게 됐다.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며 산모와 남편, 김수진 조산사가 행복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김수진 제공


산모 옆에서 가만히 뜨개질하는 조산사

“사실 우리나라 병원에서 하는 자연분만은 외국에선 고위험군 산모들에게 취하는 방식이에요. 금식하고 움직이지 말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고. 쉽게 말해 산모가 병원 시스템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그렇지만 산모는 환자가 아니거든요. 환자가 아닌, 출산의 주체가 되도록 조력하고 이끄는 게 제 일이죠.”

2014년부터는 자연주의 출산을 공부하며 본격적으로 조산사의 길을 걸었다. 자연주의 출산이 유도제나 무통 주사 등 의료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내 지식은 거기까지였다. 그가 진행하는 출산 수업을 참관한 뒤에야 ‘출산의 주체가 산모’라는 말을 이해했다.

4주차 수업이라고 했다. 강의실에는 임신 막달로 보이는 여성들과 배우자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산모는 수액 꽂고 누워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챙기고 해야 할 것이 많다. 심지어 분만 중 먹을 간식도 챙겨오라고 했다. “긴 시간을 견뎌야 하는데 먹어야 힘이 나죠.” 산통은 보통 하루 정도 지속된다.

그 시간 동안 산모는 몸을 움직이고 근육을 쓰며 출산에 이로운 자세를 찾아나가야 한다. 수진씨는 자궁이 열리는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진통의 유형과 세기, 그때마다 임신부가 취해야 할 자세나 호흡, 그리고 옆에서 확인하고 살펴야 할 것을 상세히 알려줬다. 런지 자세, 북극곰 자세 등 시범까지 보이며 연습을 많이 해두라 이른다.

분만실에서는 임신부의 동행자(주로 남편)도 할 일이 많다.

“남편분들은 옆에서 터치 마사지를 계속해주는 거예요. 어떤 분은 하다가 손가락 지문이 사라졌다고 농담도 해요. 계속 ‘잘하고 있다’ 응원해야 하는 거 알지요?”

사람들은 흔히 출산 과정에서 조산사가 몸을 부산히 움직이고 소리를 높일 거라 예상하지만 실제 수진씨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직접적인 돌봄의 역할은 배우자에게 맡긴다. 그는 산모 머리맡이나 침대 발치에 앉아 산모의 상태를 조용히 살핀다.

“외국에 이런 속담이 있어요. 가장 일을 잘하는 조산사는 산모 옆에서 말소리를 내지 않고 가만히 뜨개질하는 사람이라고요.”

그가 해야 하는 것은 출산 과정 전반을 살피고 판단하는 일이다. 조산사는 의료진이니까. 수진씨는 산모가 의료체계 안에 갇히지 않고 출산을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돕지만, 한순간도 의료진의 위치를 놓지 않는다. 출산은 매 순간 판단이 필요한 일이다.

동시에 산모를 믿는다. “이 일을 시작할 때 조산사는 산모를 믿어야 한다고 배웠어요. 이 출산 어렵겠는데, 조산사가 이런 생각을 하면 감각이 예민해진 산모에게 들킨다는 거죠. 그러면 산모가 불안해져요.” 산모를 믿되, 상황 판단은 객관적으로 하라. 모순된 일처럼 느껴지지만 다정하고도 단호한 그의 말투가 분만실 현장을 얼핏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렇기에 의료적 판단을 제외한 모든 주도권은 산모에게 넘긴다.

“출산 과정에선 저를 드러내지 않아요. 제가 경험이 더 있다는 이유로 분만실을 지배해버리면, 산모의 출산이 아니라 제 출산에 산모가 끌려오는 거니까요.”

자연주의 출산 진료실 한쪽 벽면에 산모들이 보낸 감사 편지가 가득하다. 최형락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 환희를 양보하는 조산사

강의 내내 여성들은 단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꼼꼼하게 일러주고 그만큼 준비해왔다는 거겠지. 하지만 수진씨는 제일 중요한 출산의 주체가 누구인지 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아기는 기다리면 나와요.”

아기가 자기 속도로 나오도록 조산사와 부모 등은 그저 기다리는 거라고 했다.

“아기가 나오기 직전에 힘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힘을 완전히 빼는 거예요. 머리 힘도 빼고 어깨 힘도 빼고 침대에 몸을 툭 던져놓으라는 이야기거든요. 그걸 반복하면 아기가 혼자 스스로 어깨를 돌려주면서 나와요. 아기가 알아서 합니다. 엄마랑 아빠랑 제가 하는 일은 아기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잘 올 수 있게 도와주는 거예요.”

아기 머리가 보이는 순간부터 조산사는 산모 발치에서 꼼짝하지 않고 기다린다. 길면 한 시간도 걸린다. 어깨가 굳을 정도로 긴 기다림 끝에 하나의 생명이 태어난다. 그 순간을 수진씨는 ‘환희’라고 표현했다. 말랑한 존재가 세상에 나왔다. 지금껏 한 고생은 이 감정 하나로 아무것도 아니게 된단다. 그러나 환희는 산모의 것이 돼야 하기에 그는 표현하지 않는다.

“분만실에 같이 가는 간호사들에게도 당부하는 것이,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 아빠 외에는 목소리를 내지 말라고 해요. 저는 그때 해야 하는 게, 출산 직후가 산모에게 제일 위험하거든요. 출혈이 과다할 수 있고. 저는 산모를 살펴야죠.”

그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도 같이 막 옥시토신이 나오는 거예요.”

흔히 사랑의 묘약이라 하는 이 호르몬이 산모가 아닌 조산사 자신에게도 나온다고 할 만큼 이 일은 그에게 큰 애정을 준다.

“한 아이가 태어난 걸 보면 마치 큰 숙제를 마친 것 같아요. 무사히 태어난 아이를 보는 게 너무 기쁘더라고요. 그렇게 에너지를 받는 거예요.”

하지만 옆에서는 놀란다. 병원 사람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 있다. “선생님, 며칠째 집에 안 가신 거예요?” 5년 전 센터장(자연주의출산센터)으로 온 이 병원에 자연주의 출산을 관장할 수 있는 조산사는 자신밖에 없다. 산통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니, 밤낮이 없다.

2014년부터는 1박2일 이상 어딜 가보지 못했어요. 어딜 가도 병원에 한두 시간 안에는 도착할 수 있는 곳으로만. 고향이 강릉인데, 친정 갔다가 새벽에 불려온 적도 있어요.”

자신의 몸을 통해 ‘이완’을 연습하는 조산사

개인 약속도 잡지 않는다. 잠도 깊게 들 수가 없다. 귀가 늘 열려 있단다. 아무리 피곤해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알람 소리에 바로 깬다. 한 달에 열흘 넘게 밤을 새운다. “분만실에 들어간 순간 체력과의 싸움이거든요. 굉장한 감정노동이자 육체노동이에요.” 체력 관리는 필수이다.

“제가 아침마다 한 시간씩 산에 올라가거든요. 여기 가까운 산을 보통 6시30분에 가서 한 시간 걷다 와요. 체력 관리를 하지 않으면 정말 이 일을 할 수 없어요.”

산행을 통해 얻는 것은 체력만이 아니다. 산에 올라 그곳에 마음도 내려놓고 온다. 어릴 적부터 공감을 잘하고 사람 감정을 잘 읽어내는 면이 있었다. 자신에게 조산사를 하라고 추천한 사람들도 그런 면모를 보고 말한 것이었다. 조산사가 직업이 되자 감각은 더 예민해졌다. 늘 산모의 상태를 살피려는 애씀 때문이다.

하지만 산모를 살피는 능력만큼 얻어진 것은 자신의 마음과 몸을 알아채는 능력. 지치고, 불안하고, 감정이 치우쳐지고. 산모 옆에서 조산사도 감정의 변동을 겪는다. 불안한 산모를 안심시키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다. 중심을 잡아야 한다. 늘 자신을 다스린다. 걷고 또 걷는다. “제가 핸드폰에 명상 앱만 여러 개예요.” 그가 임신부에게 강조하는 것은 ‘이완’이다. 자신을 믿고 불안을 내려놓는 방법이다. 명상을 추천하고 호흡법을 알려준다. 수진씨도 매일 아침 짬 내어 길게 숨을 뱉는다. 자신의 몸에 이완을 가져온다.

그러나 이것은 전문 직업. 마음 다스리기만으로 부족하다.

“공부해야죠. 내가 그때그때 산모에게 했던 말과 행위에 책임져야 하니까. 의료적으로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하죠.”

근육학도 공부했다. 인대와 골반을 공부한다. “근육을 이완하라고 말하고 제가 인체에 관해 모르면 안 되잖아요.” 조산사는 산모를 달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공부하고 경험하여 얻은 확신으로 산모를 이끄는 이다.

“어제 같은 경우에는 둘째 아기를 출산하는 산모인데, 아기 머리가 보이는데 안 나오는 거예요. 계속 안 나오니까 수술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산모 자세를 살짝 바꿔놓은 것만으로도 5분 만에 출산하더라고요. 그럴 때 내가 공부한 게 도움이 되는구나, 뿌듯하죠.”

조산사 수는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 한 해 10여 명만이 조산사 자격 면허를 취득한다. 2021년 신규 조산사 수는 12명이란다. 저출생 영향만이 아니다. 조산사의 역할이 비좁은 의료 현실에도 이유가 있다.

5년 전, 조산사가 센터장을 달고 왔을 때 자신을 반기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의사가 있는데 왜 굳이 조산사가 필요하냐’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이제는 산모들이 너무 만족해하니 저에게 상담을 돌리는 의사분도 계시고. 그렇게 서로 분만에 관한 방법이나 고민도 나누고요.”

사람과 생명에게서 배운다

자신의 노력이 인정받았다는 사실보다 출산에 관한 인식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데 만족을 표한다. 그가 인터뷰 내내 한 말이 있다. “산모들이 저보다 더 잘 알아요.” 여성이 임신 출산 과정에서 소외되는 것이 싫어 자연주의 출산 조산사 일을 시작한 수진씨였지만, 그도 매번 새롭게 깨닫는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여자들은 누구보다 자신의 몸을 잘 아는구나.

“저도 늘 배워요. 책에 나온 것이 전부가 아니다. 여성의 몸을 존중하고 잘 읽어야 하는구나.”

그렇게 배움과 숙련이 쌓여간다. 사람에게서 배우고, 생명에게서 배운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이가 차곡차곡 들어서인 거 같아요. 살아가는 일이 오래될수록 기쁨도 고통도 다 겪잖아요. 그걸 이미 맛본 사람으로, 누군가 격정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인 출산을 도울 수 있는 거 같아요.”

희정 기록노동자·<두 번째 글쓰기> 저자



*베테랑의 몸: 기록노동자인 희정이 자신의 분야에서 숙련공(베테랑)으로 일해온 이들을 만나, 그들의 몸과 숙련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적습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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